냉장 기술이 없었던 아주 오래전에는 맥주가 상온에서 발효되었을 것입니다. 효모를 배양하는 것도 불가능했었을 것이기 때문에 공기 중에 떠다니는 각종 균들이 술을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식의 고대 양조 전통에서 유래한 맥주 스타일이 바로 '에일 맥주'입니다. 에일 맥주는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이 소중히 여기는 다양하고 사랑받는 맥주 카테고리로 발전했습니다. 에일 맥주의 유래를 알아보고 두 가지 대표적인 종류인 페일 에일(Pale Ale)과 인디아 페일 에일(IPA)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에일 맥주의 유래
에일 맥주의 뿌리는 초기 양조업자들이 야생 효모 균주를 사용하여 곡물을 발효했던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일"이라는 용어 자체는 고대 영어에서 파생되었으며 따뜻한 온도에서 상면 발효 효모로 양조되는 맥주 유형을 나타냅니다. 이 전통적인 양조 방식은 에일에 독특한 맛과 향을 부여하여 다른 맥주 스타일과 차별화됩니다. 에일은 라거보다 청량감은 덜하지만, 입안을 채우는 느낌(마우스필, mouthfeel)은 더 물직하고 부드러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라거 맥주가 19세기 이후에나 대중화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우리 인류가 얼마나 오랫동안 에일 맥주를 마시고 즐겨왔는지에 대해 놀라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일은 영국 양조 문화의 대명사가 되었고 전 세계 맥주 산업의 지형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홈브루잉과 크래프트 맥주 영풀이 불면서 더욱 각광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에일 맥주로는 페일 에일과 인디아 페일 에일(IPA)이 있습니다. 맥주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페일 에일이나 인디아 페일 에일(IPA)을 마시고 크래프트 맥주에 입문하기도 합니다.
페일 에일
페일 에일(Pale Ale)의 '페일'은 '페일 라거'의 페일과 같습니다. 밝은 색상을 띠는 일반적인 에일 맥주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페일 에일'은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불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맥주입니다. 현시점에서 페일 에일을 만들지 않는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페일 에일의 고향은 영국입니다. 영국은 맥아 기술이 가장 발전한 국가 였고, 처음으로 맥아를 석탄에서 유황성분을 제거한 코크스(cokes)를 연료로 사용하여 구웠는데, 이렇게 코크스로 구운 맥아는 이전보다 색이 훨씬 밝았고, 이 맥주를 영국인들은 '밝은 맥주'라는 의미로 페일 에일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특히, 영국 중부의 버턴 온 트렌트(Burton on Trent) 양조장은 황산염을 많이 함유한 지역의 물을 사용하여 홉의 쌉쌀함을 살리는 페일 에일을 생산하여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버턴의 페일 에일은 정통 페일 에일의 원조이자 기준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페일 에일은 미국으로 건너가 크래프트 맥주의 히트작 중 하나인 아메리칸 페일 에일이 되었습니다. 미국식 페일 에일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쓴 맛이 강한 미국산 홉을 사용하기 때문에 달콤 쌉싸름한 홉 캐릭터가 더욱 강합니다.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페일 에일도 미국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디아 페일 에일(IPA)
인디아 페일 에일(IPA)은 단순히 말하자면 페일 에일에 홉을 더 첨가한 맥주라고 할 수 있으며, 크래프트 맥주의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홉 아로마와 쓴 맛의 여운을 남기는 IPA의 인기는 크래프트 맥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인디아 페일 에일(IPA)은 탐험과 혁신에 뿌리를 둔 유서 깊은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맥주 이름에 인도의 영어 명칭인 인디아(India)가 붙은 것은 IPA가 제국주의 시절,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인들이 인도에서도 자국에서 마셨던 맥주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맥주이기 떄문입니다. 당시 영국에서 인도로 가려면 바닷길로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야 했습니다. 원래도 상하기 쉬운 술이었던 맥주는 극심한 온도 변화를 겪어야 했기 때문에 배 위에서 술의 맛이 빠른 속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런던의 한 양조업자는 기존의 페일 에일 맥주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홉을 넣은 맥주를 만들어 인도로 보냈습니다.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많이 넣으면, 긴 항해에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인도에 도착한 후 이 맥주를 마셔 본 영국인들은 풍미가 더욱 깊어진 맛에 놀랐고, 점차적으로 이것이 알려지면서 IPA는 큰 인기를 끌면서 영국의 새로운 맥주 장르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페일 라거에 눌렸지만,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들이 감귤류, 열대과일향 등을 가진 미국산 홉을 잔뜩 넣어 미국식 IPA를 만들며 전 세계 맥주 팬들이 열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IPA를 만들지 않는 크래프트 양조장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맥주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